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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99 어떤 희생
황영찬 2013-03-29 추천 0 댓글 0 조회 1290
 

꽁트-99        어떤 희생


                                                      황   영    찬

  김 목사가 보낸 편지를 뜯는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편지의 머리말이 ‘총회장에 입후보를 하고 나서’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 결국 이렇게 되었군.”

 나는 얼마 전부터 김 목사가 중심이 되어 교단 정치 쇄신 운동을 벌려온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떤 배신감마저 느꼈다.

 “김 목사가 딴 생각이 있어 이러는 거 아니야?”

 그동안에도 여러 목사들이 나서서 쇄신 운동이다, 정풍 운동이다, 벌려오다가 슬그머니 정치판 중심으로 뛰어 들어간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딴 생각이라니? 그건 오해야. 난 자네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맡아 준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겠네.”

 김 목사는 정말 내게 자신은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선 것뿐이라고 했다. 

 “제발, 자넨 나중에 딴 소리하지 말게.”

 “뭐, 딴말 할 게 있어야지.”

 “그래야지.”

 나도 더 이상 딴 말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중에 변명 같은 구차스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김 목사가 내세우는 이야기는 교단 정치에 방관자가 되는 대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혁신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총회장 입후보들의 비전과 정책은 물론 그들의 목회 활동도 철저히 검증하여 투표자들에게 공정한 선거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가장 혁신적인 후보를 지원하여 당선토록 힘을 결집 시키겠다고 했다.

 이런 뜻을 가지고 그가 대표자가 된 모임이 활발하게 움직이더니 이제 와서 그 자신이 출마를 한다고 나섰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그가 전국 교회에 보냈을 서신을 읽으려고 펼쳐드는데 김 목사가 친필로 쓴 사신(私信)이 나왔다.

 “이 친구는 또 무슨 변명을 늘어놓고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들고 있던 총회장 입후보자의 서신 대신 그의 사신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경위를 자네만은 이해해 주기바라네. 자네도 아는 일이지만 이번 총회장에 출마할 의사를 밝힌 사람은 이 칠팔 목사와 박 한수 목사라고 알려져 왔네. 그래서 우리 모임에서는 검증을 하며 어느 후보를 지원할 것인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네. 그런데 그 모임에서 결의된 것은 제 3의 후보자를 내세우자는 것이었네.

 앞서 밝힌 두 후보는 총회장으로는 함량 미달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네. 그래서 제 3의 후보자로 우선 세 사람을 추천받아 결정하기로 했네. 우리가 추천하려고 해도 사양할 분이 계실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어떤 회원이 불쑥 이런 제안을 했네. 그건 정말 우리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네. 그의 말은 우리가 추천하고자 하는 세 사람이 다 사양을 한다면 자동적으로 우리의 대표자가 제 3의 후보자가 된다는 것일세.

 그래서 나는 극구 반대했네. 그러지 않아도 오해를 받는 터에 내가 나설 수는 없다고 말일세. 만일 그런 사태가 오면 차라리 이 모임을 해체하는 것이 좋겠다고 내가 말하자, 어떤 회원이 우리가 추천한 세 사람이 다 사양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니 그렇게 되면 우리 대표도 특별한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를 했네. 일이 그쯤 되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일세.

 어쩌겠나. 내가 꼭 입후보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잖은가? 그래서 우리의 일을 계속 추진한다는 뜻에서 나도 동의를 했네.  

 그런 후에 나는 후보자 물색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내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피해왔네. 그러므로 나는 제 3의 후보로 추천된 목사와 어떤 식으로 접촉했는지 아무 것도 몰랐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이 전해준 말을 들으면서 나는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네. 그런 분이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렇게 탄식을 했네. 우리가 사람은 바로 찾아냈으나 그들을 후보자로 내세우는 데는 실패를 했다고.

 우리 회원들이 그분들에게서 얻어낸 대답은 대략 이런 것이었네.

 김 성은 목사 - 나 같은 늙은이가 나가서 뭘 하겠는가? 일 잘하는 후배 목사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야지.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박력 있게 일해야지.

 이 성환 목사 - 나는 목회에만 전념하고 싶네. 자네들은 총회장이 되어서도 목회를 잘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해.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총회장에 당선된 목사들이 당선을 전후한 3년 이내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고 보네. 물론 그 변화는 불행한 일이지. 본인에게는 물론 교회에도 큰 손해가 된 셈이야.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있네만 근년에 들어서는 더 심한 것 같네. 그 이유야 본인들이 알겠지.

 최 중서 목사 -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해도 십년 후쯤에나 하고 싶습니다. 젊은 나이에 총회장을 지낸 분들이 증경 총회장의 품위도 지키지 못하면서 회의 때마다 나서는 걸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나이 오십도 안 된 사람이 증경 총회장이라고 뒷전에서 구경만 하며 대우만 받으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꼴불견입니까? 그래서 저는 나가도 나이 육십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십자가를 지게 되었네. 이렇게 된 바에야 하나님의 뜻인 줄 믿고 순종하는 수밖에. 내가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을 한 걸세. 내가 희생을 하자고.

 ‘희생’ 그 말 때문에 나는 몇 줄 남지 않은 김 목사의 편지를 마저 읽지 못했다.

 문득 나는 그의 이야기가 ‘국민의 큰 머슴이 되기 위하여 입후보를 했다’는 정치인들의 상투적인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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