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을 만난 사람들 06.7.9(성령강림절 후5주)
막 4:35-41
갈릴리 호수는 꽤 넓은 호수여서 바다라고 불려지고 있다. 해면보다 낮아서 돌풍이 자주 불었고 그런 때면 그곳에 익숙한 어부들도 풍랑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거기에는 주님이 계셨고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셨다.
우리는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교훈을 배우려고 한다.
Ⅰ.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일은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제자들 중 대부분이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웬만한 풍랑쯤은 겁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풍랑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도 자신들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만난 풍랑을 통해 들어난 인간의 연약함은 무엇인가?
1.미래를 예견할 수 없는 인간의 무지를 보여준다.
지금은 기상학이 발달하여 장기 예보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사실은 사람이 앞일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후에 풍랑을 만날 줄도 모르고 배를 타고 득의양양 하다가 사색이 되는 것이다.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사람들은 옛날사람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 비해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19세기의 교수들이 지녔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인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역시 중요한 일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설계하고 자신 있게 추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풍랑이 불어 닥치면 그것들은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2.풍랑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무능을 보여준다.
어부들은 그곳에서 오래 동안 고기를 잡아왔다. 배를 타고 자유롭게 왕래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다가오는 풍랑을 막을 수 없고 또 풍랑 앞에서 버틸 힘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무능이다. 각종 기계를 제작하고 공장을 건설할 때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것들이 일순간에 파괴되는 태풍 앞에서는 인간의 무능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어서 다른 생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이 있지만 인생의 풍랑 앞에서는 인간이 왜소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3.풍랑은 그들이 익숙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났지만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어부들이기 때문에 얼마쯤 유리한 점이 있다고 여기지만 인생의 풍랑은 현실적으로 가혹한 것임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익숙한 일에서 인생의 풍랑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절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수십 년을 잘 해온 일에서 단 얼마를 버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더욱 낙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Ⅱ.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일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그들 스스로 풍랑을 헤쳐 나가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들어난 그들의 어리석음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어리석음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의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고 힘들게 일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정작 주님께 도와달라고 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그랬던 것이다.
그들은 고생할 대로 고생하고 나서 주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은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어리석음은 주님이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고 불평을 한 것이다.
38절에서 제자들은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하였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제자들이 그렇게 생각을 했을 뿐이지 예수님께서 그들을 방치하신 것은 아니다.
주님은 그들의 사정을 알고 계시고 그들이 주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다리실 때 버리신 것으로 잘못 오해를 하는 것이다.
셋째 어리석은 사람은 주님의 능력을 제한적으로 믿은 것이다. 나중에 주님이 바다를 잔잔케 하신 후 제자들이 두려워하면서 했던 말은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에게는 이런 편협한 지식과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 영적인 것은 구하되 물질적인 것은 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큰일은 기도하되 작은 일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풍랑의 사건을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바다와 바람도 지배하시는 능력을 가지셨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바람과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이 그것들을 말씀 한 마디로 다스리시는 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Ⅲ.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일은 인간에게 구원의 은혜를 보여준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인해 안전하게 되었다. 바로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다.
1.그것은 어렵지 않게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사실은 함께 배에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라도 주님의 도움을 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까이 있음을 나타낸다.
문제가 있는 곳에 해결책도 함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2.그것은 어렵지 않게 주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을 나타낸다.
주님의 은혜는 복잡한 절차를 통해 그들에게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도와달라고 하니 바로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도 간단한 것이다. 그래서 은혜인 것이다.
3, 그것은 주님께 요청할 때가지 시행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믿음을 가지고 구할 때까지 보류상태에 있었던 것이 주님께 구하자마자 시행이 된 것이다.
그래서 순종해야 되고 기도해야 한다.
주시지 않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잘못 쓰려고 구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교훈과 적용
1.인생의 풍랑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하시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계획임을 믿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이 인생의 풍랑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업적 시련이 인생의 광풍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다가서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2.인생의 풍랑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방법을 포기하고 믿음의 방법으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지식과 방법대로 인생을 살려고 한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생의 바다를 헤쳐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 즉 믿음의 방법으로 행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이다.
3.인생의 풍랑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은혜를 체험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어야 한다.
아이들이 앓고 나면 약아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장애를 극복하는 동안 성장하며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된다. 마찬 가지로 인생의 광풍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서 밧단 아람으로 갈 때 벧엘에서 노숙을 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를 타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꿈을 꾸었다. 야곱은 그때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심을 깨달았다.
인생의 광풍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까까이서 지켜주시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하나님은 아주 섬세하신 분이신 것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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