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70 안수 기도
황 영 찬
김 만철 전도사가 심곡 교회에 부임한 것은 지난 봄 이었다.
신학대학을 갓 졸업한 목회 초년생에게 시골 교회라도 목회지가 결정된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도시 목회를 하겠다고 시골 교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친구도 있고 갈 데가 마땅찮다고 대학원엘 진학하는 친구도 있었다. 더러는 큰 교회의 지원을 받아 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나 김 만철 전도사는 다른 친구들처럼 그런 여유나 후원자가 없었다.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목회지를 알선해 줄 선배도 없었고 재정적 후원자가 될 평신도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심곡 교회로 부임을 했다.
목회를 나서면서 호강하고 대접을 받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져본 일이 없으므로 그는 심곡 교회의 고생도 달게 여겼다.
무엇하나 넉넉한 게 없는 곳이었다. 목회자가 왔다가 쉬 떠나는 바람에 목회자에 대한 인식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첫 목회지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 목회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밤낮 없이 기도하고 발이 닳도록 전도와 심방을 다녔다. 뿐만 아니라 도시 교회의 도움을 받아 경노잔치도 벌렸고 부산에 있는 침례병원의 협조를 얻어 무의촌 진료도 실시했다.
이런 갖가지 행사와 계속된 전도활동 때문에 침체되었던 교회의 분위기가 일신되었고 교회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도 크게 달라졌다.
교인수가 크게 늘지 못하고 재정도 늘 그 모양이지만 예배당 안은 점점 영적인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그리고 이 영적 분위기는 심령 부흥회를 앞두고는 절정에 이르렀다.
농촌 교회라서 부흥회는 농한기에 개최되었다. 너무 추워서 허드렛일조차 하기 힘든 1월이 부흥회의 적기여서 신년축복 성회라는 주제를 내걸고 부흥회를 개최했다.
부흥회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차고 매운 산골바람을 가르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예배당안의 열기도 대단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은혜가 넘쳤고 성령이 충만했다.
구경삼아 나온 사람, 병 고치겠다고 나온 사람, 교인들에 이끌려 마지못해 나온 사람도 쉽게 그 분위기에 동화되었다.
그래서 강사가 시키는 대로 박수를 치고 “아멘”과 “할렐루야”를 큰 소리로 따라 외쳤다. 기도할 때면 하라는 대로 “주여!” 소리를 크게 외쳤다.
새벽 기도회는 은사 중심으로, 낮 공부시간에는 복 받는 비결에 대하여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대중 전도를 위한 은혜의 말씀이 증거 되었다.
그런데 부흥회 마지막 시간에 환자가 업혀 들어왔다. 본인만 모르지 마을 사람 모두가 병명을 알고 있는 암 환자였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사 목사가 저녁에 데리고 나오라고 했더니 정말 떠메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김 전도사는 속으로 걱정부터 했다.
강사가 책임진다고 하지만 부흥회 끝내고 가버리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부흥회를 여러 번 참석해본 사람들은 안수를 받아도 낫는 사람이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을 알지만 이곳처럼 부흥회가 처음인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뒷얘기를 두고두고 자신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부흥회 강사는 이런 김 전도사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밀어붙였다.
“자 여러분도 함께 기도를 해 주세요. 그리고 전도사님은 환자의 몸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하세요. 나는 여기서 기도를 하겠습니다.”
강사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기도를 하려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나 김 전도사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안수 기도를 해본 일이 없는데다가 이처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하다니 겁부터 났다. 그리고 환자가 모든 사람의 기대대로 낫지 않는다면 본의 아니게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할 일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그 환자에게도 불행이었다.
“강사 목사님이 직접 안수를 해 주시지요.”
김 전도사는 강사 목사를 향해 말했다.
“전도사님도 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인데 걱정하지 말고 안수를 하세요.”
“지금까지 안수를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어서요.”
김 전도사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애를 썼다.
“믿음으로 하세요. 병은 하나님이 고치시는 것이지 사람이 고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믿음이 부족해서.”
그는 자꾸 꽁무니를 뺐다.
그러자 강사 목사는 강단에서 내려와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강사 목사는 김 전도사에게 말했다.
“전도사님도 환자 머리에 손을 얹으세요.”
김 전도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 강사 목사가 그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안수 기도가 끝나고 부흥회도 마쳤다.
마지못해 강사가 시키는 대로 환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던 김 전도사는 환자가 하나님의 기적으로 일어나길 바랐지만 환자의 상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기 믿음을 생각하면 감기 환자라도 일어나기 어렵지만 부흥회 강사의 믿음과 기도를 보아서는 벌떡 일어날 것 같았는데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김 전도사는 함께 안수 기도를 한 것이 백 번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혼자 망신을 당할 뻔 했다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부흥회가 끝난 다음 날 김 전도사는 바로 결신자 심방을 나섰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멸망 길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며 그는 그들을 격려하며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결신자를 찾아 마을 여기저기를 다닐 때 그 암환자 집에서도 심방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부담감을 느낀 김 전도사는 내일 방문을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그는 미루다가 마지막에 그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는 아침부터 기다린 눈치였다. 정성스레 준비한 다과를 내놓으면서 환자의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날 안수 기도를 받고나서부터는 밤에 잠도 잘 잘고 통증도 가라앉았어요. 그리고 배가 부른 것도 빠지고요.”
환자 대신 그녀의 남편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고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함께 심방을 간 집사들이 저마다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다.
“--그리고 환자가 또 안수기도를 받았으면 해서요.”
“저런, 이처럼 고마울 데가 있나? 그새 믿음이 자랐군요.”
“그래야지요. 계속 안수 기도를 받아야지요.”
함께 간 집사들이 김 전도사를 앞질러 대답을 하는 바람에 그는 할 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안수 기도를 할 사람은 김 전도사인데 집사들이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승낙을 한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김 전사도 부흥회 때처럼 꽁무니를 뺄 수도 없다. 떠넘길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안수기도를 시작했다.
안수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만 기도를 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온 힘을 기울여 기도를 했다. 이마에는 물론 등줄기에도 흥건히 땀이 흘러내렸다.
“기도를 받고 나니 어때요?”
기도가 끝나자마자 집사 중 한 사람이 시키지 않은 질문으로 김 전도사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모두들 환자의 입에 시선을 못 박고 숨을 죽였다.
“불덩이 같은 것이 머리로 들어와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마음은 편안해지고요.”
“할렐루야!”
“영숙이 엄만 이제 치료받은 거예요.”
“그래요. 이제 병균은 그 불로 다 타죽었어요. 이젠 기운만 차리면 돼요.”
이번에도 집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김 전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기는 할 말이 없었다. 모두 그들이 그가 할 말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몇 번씩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으며 심방자들은 그 집에서 나왔다.
“전도사님, 어려우시겠지만 내일도 또 와주십시오.”
환자의 남편이 말했다.
“예. 그러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김 전도사는 돌아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다. 안수 기도를 겁내 꽁무니를 빼던 자기가 서슴지 않고 또 오겠다고 대답한 일도 그렇지만 그런 자기를 통해 하나님이 병 고치는 능력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문득 자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손을 아픈 사람 모두에게 얹고 기도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강사님 말씀대로 내가 안수 기도를 했었어야 되는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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