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74 전화(電話)
황 영 찬
지금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김 칠팔 목사는 처음 목회를 춘천지방에서 시작했다.
그가 목회를 5년쯤 했을 때 서울의 K 교회에서 그에게 청빙서를 보내왔다.
어떤 목회자는 서울로 가려고 기도도 하고 또 아는 동역자들에게 부탁도 한다는데 김 목사는 그런 생각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청빙서는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는 그 청빙서를 앞에 놓고 기도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아내와도 진지하게 의논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결정을 뒤로 미루기만 할 수 없어서 그는 생각다 못해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나라고 무슨 조언을 선뜻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정말 나는, 나라면 이렇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그에게 털어놨다.
그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이렇게 말머리를 꺼낸 나는 결국 그 청빙서가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지금까지 목회지를 옮기겠다고 누구에게도 말한 일이 없고 청빙서를 보내온 그 교회의 교인들 중 아는 사람도 없으니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물론 그것을 어떤 시험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덧붙이니 김 목사도 내 생각에 동의를 했다.
그래서 김 목사는 서울로 목회지를 옮겼다.
김 목사가 K 교회에 부임한지 채 3년이 되지 않아 같은 서울 시내에 있는 S 교회로부터 또 청빙서를 받았다.
청빙서를 받은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부터 했다. 물론 그는 아내와도 의논을 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또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번에도 목사님이 내게 조언을 해주셨으니 이번에도 또 조언을 해주셔야죠.”
전화로 하는 말이지만 그의 부탁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웬만하면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그는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렸다. 별 수 없이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S 교회의 교세가 지금 교회보다 큽니까?”
사실은 물어보나 마나한 이야기였다. 어느 교회든지 목회자를 청빙하려면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보다 자기들 교회가 더 크다든가 아니면 교세는 작더라도 다른 면에서 더 낫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뭐, 크기는 하지만 월등하게 크지는 않아요.”
“청빙서는 어떻게 받으셨어요?”
“뭐, 먼저 번 경우와 같지요. 나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불쑥 가져왔으니까요.”
“그래요? 그럼 먼저처럼 결정하시면 좋겠네요. 하나님은 같은 방법으로 인도하시는 때가 많으니까요.”
말을 하면서도,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다만 똑 같은 경우라면 똑 같은 원리를 따라 행동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도 옮겨야 하겠군요?”
그는 내 뜻을 확인하려고 다시 물었다.
“저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제 생각일 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조언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처럼 긴 시간을 통화하고 나서 그의 전화는 끝났다.
며칠 후 그는 새로 부임한 S 교회에서, 전화로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또 몇 년이 지났다. 이번에도 김 목사는 청빙서 때문에 전화를 걸어왔다.
“어느 교회인데요?”
“지방에 있는 교회인데 교세는 비슷한 것 같아요.”
“비슷하다니요.”
“교인은 그쪽이 많고 재정은 이쪽이 많으니 결국 비슷한 셈이지요.”
“청빙서는 어떻게 받으셨어요?”
“뭐, 먼저 번과 같지요.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내왔어요. 하도 이상해서 알아보니 나를 아는 집사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그렇게 된 모양이어요.”
“그래요? 어쩐지 이번에는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네요. 더 기도를 해보시지요. 저도 당장은 무슨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그래야 되겠지요?”
그래서 전화는 쉽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나는 그 일로 그와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동일한 상황에서는 동일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이번에는 그 말을 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동일한 상황인데 그는 그것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것이 그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하도 이상해서 알아보니 나를 아는 집사가 강력 추천을 해서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의 속마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번 일에서는 비켜 서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 전화를 기다리다가 답답하여 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바쁘다보니 그 문제를 잊고 있었네요. 제가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세요. 저도 교회를 자주 옮기다보니 이젠 안정을 잃는 것 같아서 빨리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어요. 그러니 꼭 좀 기도해 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답처럼 그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그 뒤로도 두어 차례 그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내 대답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도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지금도 김 목사는 서울의 S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해마다 내게 예쁜 성탄카드를 보내주고 있다. 그 대신 우리 둘 사이에는 그일 후로 전화를 하지 않고 있다.
그때 공연히 오래 끌던 전화의 일이 쑥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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