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75 땅굴 견학
황 영 찬
지난 봄에 관광 여행을 다녀올 때만 해도 이번 여행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가을에 또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모두들 찬성을 했다. 그런데 지난 봄에 다녀온 여행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인지 가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또 관광 여행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 온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또 여행을 가느냐는 여론에 밀려 관광이 견학으로 바뀌었다.
땅굴을 견학하되 가며오며 한 군데쯤 명소를 들리면 이름이 땅굴 견학이지 관광여행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가겠다고 나서는 회원들의 수는 지난 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견학이라는 것과 얼마 전 다녀 온 여행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여전도회 임원들은 회원 모집에 나섰다.
그래서 가까스로 버스 한 대 분의 회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아침에 버스를 탈 때 문제가 생겼다. 두 명의 회원이 좌석에 앉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가겠다고 해서 생긴 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가겠다고 하던 사람들 중에서 한두 명쯤 못 가게 되는 사정이 있기 때문에 총무인 김 예숙 집사가 추가 등록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여행 준비를 하고 나온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자리를 만들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총무만 난처하게 되었다. 다행이 회장이 그 일을 거들고 나섰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함께 가시도록 합시다. 그리고 잠간씩 자리를 양보하면 될 것입니다. 가령 한 분이 5분이나 10분 자리를 양보하면 모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총무는 운전기사에게 사정하여 보조 의자를 구해달라고 했으나 없다는 짧은 대답만 들었다. 별 수 없이 추가 등록한 두 사람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앉아야 한다는 운전기사의 말 때문에 누군가가 꺼내 주는 야외용 돗자리를 통로에 펼쳐놓고 그 두 사람이 앉았다.
도심지를 벗어난 버스는 기분 좋게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즐겁게 이야기들을 나눴다. 차가 달리는 동안 시간은 벌써 30분이 지났다. 총무는 버스 앞쪽에 달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며 누가 통로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총무는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내가 잠깐 거기 앉아갈 테니 이리로 오세요.”
“거긴 총무님이 앉으셔야죠. 우린 괜찮아요.”
그들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뭐, 잠깐인데요. 괜찮아요.”
총무가 그들 중 한 사람을 일으키려고 하자 막무가내로 버텼다.
“여기도 괜찮아요.”
할 수 없이 총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총무는 자기 뜻대로 자기 자리에 앉히지는 못했어도 주의를 환기 시켰으리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총무가 제 자리에 앉자 버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다만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성가가 차 안을 메웠다.
총무는 그 노래를 들으며 문득 어제 예배드릴 때 일을 생각했다.
어제 주일 예배 시간에 바로 앞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의자는 바로 창문 옆이어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그 대신 햇빛도 비쳤다. 꼭 한 사람이 앉을 자리에 눈부신 햇빛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한 채 빈자리가 있는 것을 보고 어느 교인이 교회 안쪽에 있는 통로로 다가왔다.
“좀 다가앉으시죠.”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궁둥이만 들썩였다. 옆으로 옮겨 앉을 자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옆의 사람도 마찬 가지였다. 맨 가장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꼼짝도 하지 않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자리를 찾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말했다.
“같이 좀 앉으실까요?”
그러자 그 사람은 빈자리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들어 무릎에 올려놓고 앞만 바라보았다.
사정을 알게 된 그 사람이, 몇 사람의 무릎을 스쳐지나가 그 햇빛이 쏟아지는 자리에 앉았다.
“겨울 같으면 그 자리가 따뜻하다고 서로 앉으려고 했을 텐데.”
총무는 꼼짝도 않고 앞만 바라보는 그녀의 뒤통수를 보면서 입속으로 중얼 거렸다.
한참 동안 기다리다가 총무인 김 집사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차 안이 너무 조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자고 있었다. 여자들이 집을 떠나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겠는가? 밤잠을 설쳤을 테고 꼭두새벽부터 야단법석을 떨었을 테니 왜 졸음이 오지 않겠는가.
더러는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취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은 목적지까지 줄곧 눈을 감고 갔다. 통로에 앉은 사람들도 자는 척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총무 집사만 속을 끓이느라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땅굴을 견학한 뒤 바로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어디 들릴 데가 있다면서 줄곧 통로에 앉아 있었던 그 두 사람이 떨어졌다.
그러자 모두들 다행이다 싶은지 얼굴이 활짝 피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차안은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차 뒤에서 시작된 복음성가를 모두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복음성가가 이어지더니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갈 때는 재미없게 잠만 자지 말고 신나게 놀아봅시다.”
“좋습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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