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77 어느 날의 심방(2)
황 영 찬
“목사님! 어떻게 하죠? 우리 집 애가 Y 여고에 배정됐다고 울고불고 야단이어요.”
고교를 진학하는 딸을 둔 김 영숙 집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왜, 그 학교가 어때서요?”
“뭐, 학교가 언덕에 있어서 다리통이 굵어진 다나요?”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김 집사의 말뜻은 쉽게 알아차렸다.
춘천이 고교 평준화 지역이 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춘천에는 여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모두 넷이 있다. 그중 하나는 시외지역에 있어서 평준화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J 고교는 남녀 공학인데다가 그나마 여학생 학급 수가 적어서 숫제 남학생들 틈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김 영순 집사의 딸이 배정된 Y 여고는 봉의산 기슭에 있어 교통편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언덕길이어서 걸어 다니기가 조금은 힘들어 사춘기의 여학생들이 다리통이 굵어진다고 질색을 했다. 그래서 결국 여학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은 C 여고였다.
비교적 시내 중심부에 있어 교통편이 좋아 통학하기가 좋고 다른 학교의 문제 같은 것이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남학생들보다 여학생이 고교 배정 추첨에 꽤나 신경을 썼고, 수능 시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원하는 학교 배정을 위해 기도하는 학부모나 여학생들이 많았다.
“뭐, 그러다가 그치겠죠.”
나는 김 집사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우선 별 일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펄쩍 뛰었다.
“그치긴요? 엄마가 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 학교로 배정받았다고 야단인데요. 그러니 그걸 어쩌죠?”
“글쎄요.”
이번에는 나도 아까처럼 쉽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래저래 입시철은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데 이젠 별일이 다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 어려우시지만 오셔서 우리 아이 좀 달래주세요.”
“엄마가 달래지 못하는 걸 내가 달랠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는 걸요.”
“그럼 내가 가도록 하죠.”
그래서 우선 전화는 끊었지만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어떻게 달랜담?”
나는 집을 나서면서 문득 교회의 일이 이렇게 다양화 되어가는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수능시험이 다가오면 교회에서도 한차례 홍역을 치른다. 학부모 특별 기도회가 있고 엿 파티를 겸한 학생회 특별 모임도 있다. 그리고 시험을 앞두고는 수험생들에 대한 안수기도가 이뤄진다.
그래도 점수가 하위권인 학생은 여전히 있다. 안수기도를 하는 목사로서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아는 것도 쓰지 못하는 실수가 없고 지각이나 발병과 같은 사고가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지만 학부모나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지를 않았다. 안수기도를 받으면 모르는 것도 알게 되고 가령 정답을 몰라 눈 딱 감고 찍을 때 정답을 고르는 행운이 따른다고 믿었다. 그러니 수능 시험 점수가 바라던 만큼 나오지 않거나 결국 원하던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못하면 목사의 입장만 나처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교 배정까지 문제가 되니 갈수록 태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 영숙 집사의 집을 향해 가다가 먼저 임 정순 집사 댁을 들렸다. 그 집사도 여학생이 있어 이번에 고교 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목사가 김 집사네 가정을 심방하면서 자기 집은 그냥 지나쳤다고 서운해 하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고, 또 임 집사네 사정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당장은 김 집사의 집으로 달려가도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얼마쯤 시간을 벌어보자는 생각이 작용했다.
그런데 임 집사의 딸도 Y 여고에 배정을 받아 그 집도 초상집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김 집사와 다른 것은 임 정순 집사가 아이 대신 낙심을 하고 있는 일이었다. 고교 배정 때문에 사십 일 작정 새벽 기도를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아이 보기가 민망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몇 마디 짧은 말로 위로를 하고 함께 기도를 한 후 바로 일어나서 처음 생각대로 김 집사 집으로 갔다.
가보니, 전화로 들은 대로 아이는 울고불고 야단이다.
“Y 여고에 배정 받은 게 싫은 모양이지? 그리고 그건 어머니가 기도를 안 한 탓만 같고.”
나는 어떻게든 아이의 말문을 열어보려고 슬슬 구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이 궁해진 나는 조금 전에 들른 임 집사 네 사정을 이야기했다.
“임 집사님은 사십 일 작정 새벽 기도를 했는데도 너처럼 됐어. 컴퓨터가 통학 거리에 맞춰 배정을 한 거지. 그러니 꼭 엄마가 기도를 안 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잖니?”
“그게 정말이어요?”
아이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도 괜찮아요.”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의 태도가 돌변했다. 울던 아이가 금방 웃는 아이가 됐다.
“아이가 저럴 수가.”
김 집사는 아주 좋아하면서도 믿기 어렵다는 듯이 몇 번씩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너, 이젠 울지 않을 거지? 괜찮은 거야?”
김 집사는 내가 보는 앞에서 무슨 다짐이라도 받아두겠다는 태도로 자꾸 물었다.
“걱정 마세요. 난 이제 괜찮으니. 헤헤.”
아이는 언제 그랬냐 싶게 명랑했다.
그래서 나는 심방 온 보람을 느끼며 김 집사의 집을 나왔다. 그러나 아까 임 집사의 일이 마음에 걸려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임 집사님 일이 걱정돼서 가다가 또 들렸어요.”
“그냥 가시지 않고요.”
임 집사는 그렇게 말은 하지만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김 집사님 집에 가서 아이에게 임 집사님 이야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를요.”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했는데도 Y 여고에 배정을 받았다고요.”
“그랬더니 뭐래요?”
“글쎄, 그때까지 울고불고 야단이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는 거예요. 그럼 됐다면서요.”
“그랬군요.”
이렇게 내 말을 듣던 임 집사의 표정도 천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 이젠 하나님의 뜻을 알겠어요.”
“하나님의 뜻이라뇨.”
“하나님은 저희 집을 통해 김 집사님 네 아이에게 위로를 주신 거예요.”
처음에는 나도 임 집사가 하는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이내 그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그렇군요.”
나는 임 집사가 침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이내 활기찬 모습을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나는 임 집사의 집을 나와 돌아오면서 그녀의 말을 생각했다. 그녀는 하나님이 자기 집을 통해 김 집사의 집을 위로하셨다고 했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게 하신 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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