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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78 이상한 사람
황영찬 2010-04-13 추천 0 댓글 0 조회 372
 

꽁트-78         이상한 사람


                                                               황      영     찬


 자주는 아니지만 경춘선 열차를 가끔 탔다. 그때마다 보게 되는 열차 판매원 중에 내 관심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삼십이 채 안된 그는 알맞은 키에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누가 보더라도 미남 청년이다.

 커다란 가방 하나를 들고 열차 안으로 들어와서는 짐짓 딴전을 부리다가 얼른 가지고 온 상품을 사람들 무릎 위에 척척 올려놓고 그럴싸하게 선전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 선전이 그럴 듯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목소리가 웅변가나 성악가처럼 넉넉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가 있다. 나는 그의 말재간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오며 가며 눈여겨보았더니 그는 청량리역에서 춘천행 열차를 타고 강촌  역에서 내려 다시 청량리 행 열차로 갈아타고는 했다. 기회를 엿보다가 하루는 강촌역에서 그를 따라 나도 내렸다.

 “여보게. 젊은이, 잠깐 말 좀 나눌 시간이 있을까?”

 나는 그가 역 구내 의자에 앉아 상행선을 기다릴 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그는 경계하는 눈치를 내게 보였다.

 “나는 목사인데, 청년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래.”

 “제게요?”

 “그렇다네.”

 지금까지 나는 그를 눈여겨보면서 그의 달변에 늘 감탄을 해왔었다. 어수선한 열차 안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당당하게 상품 소개를 하는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문득 그가 복음을 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꽤 흥미가 당겼고 정말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접근을 한 것이다.

 나는 그의 이름과 수입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김 달성이라는 것과 한 달 수입은 그냥 먹고 살만하다는 말만 들었다.

 “김 달성 씨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어떤 일인데요?”

 “뭐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하지만 파는 물건이 달라요. 그것도 돈을 받는 게 아니고 거저 나눠주기만 하면 돼요.”

 “그게 뭔데요?”

 그도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복음이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전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요.”

 “믿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믿은 대로 말하면 되는 겁니다.”   

 “그걸 제가 한단 말입니까?”    

 그는 깜짝 놀라더니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나 내가 계속 설득하자 점차 그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그리고 며칠이 안가 그는 예수를 영접했고 바울처럼 전도를 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으므로 이러한 그의 변화가 얼마나 내게 기쁜 일인지 몰랐다. 그래서 전도 원고를 함께 작성했고 연극배우가 대사를 외우듯 그도 원고를 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고 또 감사를 드렸다.

 열심히 준비한 끝에 마침내 그의 열차 전도가 시작되었다.

 그는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상품 가방 대신 이번에는 성경책을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여행 중에 계신 여러분께 잠시 유익한 정보를 한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정보는 생활필수품 소개가 아니라 한 차원 더 높은 생명 필수품인바 구원의 진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워낙 말재간이 있어서 그는 어렵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그의 말에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하는 일이어서 그러던가 아니면 원고를 달달 외우지 못해 자신감이 없어서 그러려니 생각을 했다. 갑작스런 그의 변신이 그 자신에게도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리라고 여겼다. 

 처음부터 잘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차차 나아지겠지, 하고 다음 열차 칸에서 그의 분발에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히려 처음보다 못하니 말이다. 그 다음 칸에서는 더 맥 빠진 소리였다. 정말 한심스러웠다.

 “아니, 김 선생, 왜 그래?”

 나는 가볍게 그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글쎄요.”

 “싸구려 상품을 팔 때 그 신명나게 나팔 불던 솜씨를 어디 숨겼느냐 말이야.”

 “그것과 이것은 다르잖아요.”

 “다르다고 생각하면 더 잘해야 되잖아.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 기어드는 목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를 나무라기 위해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용기를 갖게 하려고 애를 썼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되는지.” 

 “생각을 해봐요. 싸구려 상품을 팔 때는 큰 소리를 탕탕 쳤는데, 생명의 양식을 전하면서는 기가 죽다니.”

 “상품이야. 그래야 사니 그렇죠.”

 “왜 전도는 그렇게 못하죠?”

 “진리를 말하면서 싸구려 상품 팔 때처럼 열 낼 필요가 없죠.”

 “열정적으로 말한다고 진리가 거짓말이 되는 게 아니잖아?”

 “글쎄. 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말장난 그만 두고 다음에는 잘해 봐요. 최소한도 물건 팔 때처럼.”

 나는 다시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그를 격려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도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열차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 뒤로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내게 열차 전도를 못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그만두었다. 나도 그만 그에게서 손을 들었다.

 며칠 후 나는 경춘선 열차에서 신명나게 성품을 선전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상품을 손님 무릎에 올려놓는 그의 손놀림도 여전히 민첩했다.

 나는 그를 눈여겨보면서 혼자 소리로 중얼거렸다.

 “참 이상한 사람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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