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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79 어떤 침묵
황영찬 2010-04-13 추천 0 댓글 0 조회 362
 

꽁트-79         어떤 침묵


                                                   황     영     찬


 “목사님이십니까? 저 김 종순인데요. 기억하시겠습니까?.”

 “글쎄요.”

 전화기 저쪽에서 반가움을 터뜨리고 있는 목소리는 나를 잘 알고 있는 모양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실 겁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니까요.”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그가 떠오르지 않았다.

 “20년 전 일이라고요?”

 별 수 없이 나는 그가 던진 말을 따라하면서 아직도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렇습니다. 20년 전에 낙원 교회의 전도사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네, 그러세요?”

 나는 같은 지방에서 30여년 목회를 해오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20년 전의 일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얼른 그의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20년 전 일이면 제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름만 가지고서는--”

 “아직도 생각이 잘 나시지 않는 모양이지요?”

 내가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저쪽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말을 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들어서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군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나도 더 이상 우물쭈물하는 것이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 솔직히 말했다.

 “그러실 테죠. 제가 일간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알아 뵙질 못해서. 그러니 꼭 방문해 주세요.”

 “예. 꼭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그와의 전화는 끝났다. 나는 그길로 내 서재에서 20여 년 전의 일을 기억해 낼 수 있는 어떤 재료가 없을까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낙원 교회의 역사를 담은 책자가 있었으면 도움이 될 터이나 아직 그런 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나는 총회 주소록을 찾아보았다. 그 주소록에는 전국 교회와 목회자 명단이 나와 있었다. 목회자 이름 중 김 종순을 찾으니 세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들 세 사람은 내가 다 알만한 목사였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낙원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박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낙원 교회의 역대 목회자에 대해서 알 수 있나요? 20년 전에 김 종순 전도사가 있었는지 알아봐 주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시원스럽게 대답을 하더니 박 목사는 어렵지 않게 그의 이름을 찾아냈다.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교회를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요?”

 일단,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근거로 그에 대한 기억의 비늘 같은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6개월을 못 넘기고 떠났으며 그는 누구인가?

 이렇게 더듬어보아도 그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다시 낙원 교회 박 목사에게 김 종순 전도사의 앞과 뒤에 있었던 목회자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렇게 해서, 김 종순 전도사의 앞에 시무했던 목회자와 그 뒤에 목회를 했던 목회자의 이름을 알게 되니, 아하, 그 사람, 하고 기억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었군!”

 비로소 나는 20년 전의 그의 얼굴을 기억해 냈다.

 그때 김 전도사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새파랗게 젊은 목회자였다.

 지금은 목회자 중 목사의 수가 많지만 그 무렵에는 전도사의 수가 더 많았다. 그래서 웬만한 교회에서는 전도사가 담임 목회를 하고 있었다.

 낙원 교회에 부임한 김 종순 전도사는 열심을 가지고 첫 목회를 시작했다.

 의욕이 넘치는 김 전도사는 새로운 일들을 시작했고 성도들의 재 헌신을 강조했다.

 그러다가 오 민재 집사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 오 집사님이 왜 그러시죠?”

 김 전도사는 은밀히 다른 집사에게 물어보았다.

 “뭐, 늘 그래 왔는데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나 다른 집사는 그를 고쳐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도사님이 단단히 권면하셔야지요. 웬만큼 말해선 꿈쩍도 안할 걸요?”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말씀드려보지요.”

 그래서 김 전도사는 그를 찾아가서 겁도 없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집사님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김 전도사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니 그는 어안이 벙벙하여 대답을 못했다. 이렇게 대답을 못하고 쩔쩔 맬 때 김 전도사는 쾌재를 부르며 훌쩍 그의 앞을 떠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도화선이 되었다.

 “그래, 집사보고 구원받았느냐고 묻는 전도사님의 처사가 옳습니까?”

 오 집사가 제직회에서 김 전도사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여러분들이 말해보세요. 그런 질문이 맞습니까? 그리고 선택을 하십시오. 나를 떠나라고 하든가 전도사님을 떠나라고 하든가.”

 김 전도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진전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집사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슬금슬금 자리를 떠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결국 김 전도사가 며칠 후 교회 앞에 사임을 발표할 때에도 침묵을 지켰다.  

 전화가 온 다음 날이었다.

 “이번에 K은행 지점장으로 왔습니다. 저는 그때 이곳을 떠나면서 목회를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통 소식을 못 들었군요. 정말 오랜만이오!”

 나는 그를 20년 만에 만났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낙원 교회의 오 집사를 생각하며 그에게 말했다.

 “우선 축하를 드립니다! 지점장으로 오신 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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