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80 재활원 원장
황 영 찬
소망 재활원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예배를 드렸다.
가까운 교회의 목회자를 초청하여 드리는 예배는 재활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날은 매주 설교를 해주시는 목사가 해외여행 중이어서 그 교회의 전도사가 대신 와서 설교를 했다. 그는 젊은 전도사답게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는 그의 설교는 그것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했다. 어딘가 신체 한 부분이 장애인 원생들에게는 그런 설교처럼 듣기 좋은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원장 최 성수 집사는, 아이고 저런, 하며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공연히 그들의 아픈 상처만 건드리는 것이라고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이렇게 걱정하는 원장이나 직원들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전도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는 원생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각각 자기의 오른 손을 고침을 받고자 하는 신체 부위에 대라고 했다.
“자, 눈을 감으시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아픈 곳에 손을 대세요!”
원장인 최 집사는 눈을 감고 있어서 누가 자기의 손을 아픈 곳이나 장애가 있는 곳에 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기도 중이어서 눈을 감고 있지만 사실은 눈을 뜨고 보기도 두려웠다.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의심이 그것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의심은 불신앙입니다.”
전도사는 믿기지 않아 아픈 곳에 손을 대지 않는 원생들에게 계속해서 믿음으로 순종하라고 했다.
이렇게 그는 몇 번이고 믿음을 강조하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저들이 믿음을 가지고 아픈 곳에 손을 댔습니다. 그 손을 붙잡아 주시고 당신의 능력을 부어주십시오. 믿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원장 최 성수 집사는 전도사의 열정적인 기도를 들으면서 문득 오래 전 일을 떠올렸다.
지금의 전도사가 그때의 자기 모습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최 성수 집사는 기도원에서 일주일 금식 기도를 했었다.
그로서는 금식을 했고 생생한 은혜의 체험도 했기 때문에 자신은 믿음이 충만하다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각양 은사를 주셨다는 확신이 불 일듯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그가 은혜의 체험으로 들떠 있을 때 그의 눈에는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들어왔다.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그 모습은 마치 옛날 성전 미문 앞의 앉은뱅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걷게 하고 뛰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장소가 마음에 걸렸다. 기도하는 장소로는 적합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슨 구경거리처럼 되는 것은 앉은뱅이인 그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 집사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은 어느 것을 택하고 싶소. 계속 이렇게 살고 싶소? 아니면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성한 사람이 되고 싶소?”
그는 말을 채 알아듣지 못했는지 멀뚱히 최 집사를 쳐다보기만 했다.
“하기는, 여기에 무슨 선택이 있겠소? 무조건 일어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 최 집사는 덥석 그를 안아들었다.
“내가 당신을 고쳐 주겠소. 아니 예수님이 당신을 고쳐줄 거요.”
최 집사는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그를 내려놓았다.
“자, 기도합시다!”
최 집사는, 그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해 그가 하는 대로 자기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최 집사는 베드로와 요한이 했던 대로 외쳤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그때의 광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예수님, 영광을 받으십시오. 당신의 능력과 사랑을 이 종으로 하여금 나타내게 하옵소서. 이 사람을 미문 앞 앉은뱅이처럼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그는 온 힘을 기울여 기도했다.
그러나 그가 눈을 떴을 때, 어느새 몰려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앉은뱅이는 그냥 앉아서 멀뚱멀뚱 눈망울만 굴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최 집사는 물러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앉은뱅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주여, 믿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믿습니다.”를 외쳤다. 그러나 그의 믿음대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손 치워!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이번에는 참다못해 앉은뱅이가 그를 향해 소리를 쳤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돌았군.”
구경꾼들 중에서 아주 큰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거기에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부끄러움으로 그는 거기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뛰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는 그날부터 장애인에 대한 부담감 속에 살았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장애인을 돕겠다고 나섰다. 세월이 지나서 그는 마침내 재활원을 운영하는 책임자가 된 것이다.
그가 옛날 일을 생각하는 동안 전도사의 뜨거운 기도도 끝이 났다.
그는 원생들을 둘러보면서 무슨 기적이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일어나지 않았다고 없는 게 아닙니다. 조금 있다가도 나타나고 몇 달 후에도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으십시오.”
전도사의 설교도 끝이 나고, 예배도 마쳤다.
최 집사는 전도사와 원장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어디, 기도원엘 다녀오신 모양이지요?”
“지난 주간에 일주일 금식 기도를 하고 왔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옛날의 자기 모습그대로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일어나고 있지요.”
원장은 자기의 일을 두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
전도사가 무슨 소린가 다시 물으려고 하자 원장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어느새 봄기운이 높은 산까지 퍼졌어요.”
먼 산을 바라보며 원장은 아예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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