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82 이상한 여자
황 영 찬
주일 낮 예배를 드린 후 나는 곧장 목양실로 들어갔다. 목양실은 아침부터 피워놓은 난로 때문에 아주 따뜻했다. 게다가 맑은 햇살이 유리 창문을 통해 실내 가득히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난로 가까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목양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김 문자 집사가 들어왔다.
“목사님께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그러세요? 어서 앉으세요.”
나는 그녀에게 내 맞은 편 자리를 가리켰다.
“바로 갈 텐데요. 서서 말씀드리지요.”
“뭐가 그리 바쁘셔서 앉지도 못하고 그래요?”
“간단한 말씀이어요. 실은 목사님께 죄송한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뭐, 다른 일이야 있겠어요? 본교회로 돌아가는 일 말고는요.”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기어드는 소리로 말했다.
“본교회로 가다니요?”
나는 깜작 놀라서 물었다.
목사가 제일 신경 쓰는 일이 신자의 이탈 방지가 아니겠는가. 신자가 다른 교회로 가는 것을 이탈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 좋다할 목사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고 선포(?)하고 가버리니 어찌 속이 끓지 않으랴.
“아무래도 본 교회로 가야겠어요.”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교회가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기는 한데 한편 겁이 나서요.”
“겁이 나다니요?”
“하나님의 일을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고 마음이 불안해져서요. 이 교회는 뭐 힘든 일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서 가신다는 겁니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언제는 힘이 들어서 신앙생활을 못하겠다더니 지금은 또 그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다.
지금부터 꼭 일 년 전, 그녀가 처음 우리 교회에 나와서 했던 소리는 지금과는 전연 딴판이었다. 그때 그녀는 우리 교회를 다니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그 교회는 교인들을 정신없이 몰아붙이고 있어요. 잠시도 그냥 두지 않고 달달 볶는 것 같다니까요. 처음에는 교육관을 짓는다고 빚을 지더니 그 빚을 채 갚기도 전에 또 기도원을 짓는다고 덜컥 빚을 졌어요. 그런데 내년에는 또 예배당을 신축한다나 봐요. 리모델링을 한다더니 아예 헐고 새로 짖는다는 거예요. 글쎄 교회가 꼭 무슨 건설회사 같다니까요. 정신없이 짓기만 하고. 그리고 계속 헌금하라고 야단이니 말이요.”
그런 이야기는 나도 들어서 아는 일이었다. 그녀 말마따나 정신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보기에는 활기가 넘쳐나며 성장하는 교회가 확실했다.
“그래서 전 평안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배겨내지를 못하겠어요.”
“목사님께는 말씀드렸나요?”
“예. 그러니까 이렇게 와서 말씀을 드리는 거죠.”
그녀는 아주 당당했다.
“신앙생활을 하기는 어느 교회든지 다 힘든 거야요. 그 교회는 건축하느라고 힘이 들었지만 저희 교회는 그런 일 대신 전도하는 게 힘들 거야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야 교회의 사명이니 당연히 해야죠. 그러나 건축은 그렇지 않지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다행이네요. 그럼 등록하세요.”
우리 교회를 다니겠다고 작정하고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긴 말 할 것 없다고 여겨 등록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는 당당했다.
그동안 저쪽 교회에서 힘들어서 왔다기에 되도록 신경 쓸 일 없도록 배려를 한 게 오히려 그녀를 떠나가도록 한 셈이 되었다. 언제는 일 때문에 평안히 쉬고 싶다더니 이제는 일하러 가겠다는 것이었다.
“교회든 교인이든 일해야지요. 그게 보람이지요.”
불쑥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목양실을 나갔다.
“우리도 무얼 하나 헐고서라도 새로 지어야 할 걸 그랬나?”
나는 힘없이 중얼 거렸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나는 그녀가 돌아기기로 한 교회가 이미 모든 건축을 끝냈음을 기억해 냈다. 정말이지 아까는 왜 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이상하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이상하다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중얼 거렸다.
“참, 그 여자 이상하군. 그걸 모를 리도 없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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