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84 하나님의 역사
황 영 찬
나는 내가 간섭 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간섭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일을 맡겨 놓고 지켜보다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여겨질 때까지 기다렸다.
사실이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겨놓고 지켜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맡겨 놓고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 내가 나서 해치우는 게 낫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걸 꾹 참았다.
그런 내가 다른 교회의 일로 신경을 쓰는 것은 평소의 나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영광 교회 김 전도사의 일은 그냥 보기가 너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에 있는 선배 목사로서 어떤 조언이라도 해주는 게 목회자의 도리라고 믿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생각을 계속 자제해 왔다.
나야, 좋은 뜻에서 충고를 하여도 듣는 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줄지 염려가 되었다.
그런데 사태가 악화돼 내 자제심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영광교회 김 전도사에게 말했다.
“김 전도사, 그 환자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물론 기도하면서 하는 일이겠지만 말이야.”
내가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김 전도사가 붙들고 있는 간암 환자 때문이었다.
만성적 피로를 호소해 오던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치료시기를 놓친 간암 환자로 판명되었으니 본인도 그렇겠지만 목회자의 마음인들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그래서 김 전도사는 그 청년을 위해 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그가 나을 때까지 기도하되 하루 중 아침은 금식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지금까지 그것을 지켜오는 중이었다.
그런 김 전도사를 두고 내가 염려를 하게 된 것은 그가 병 고치는 은사를 강조하면서 믿기만 하면 무슨 병이든지 낫는다고 말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 걱정도 마세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으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꽃다운 인생의 나이에 죽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야말로 이런 일에 나타나야 하나님이 더 영광을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어떤 의사는 환자에게 병의 상태를 사실 대로 말해 주지만 어떤 의사는 환자에게 듣기 좋게 말한다.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 충격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전도사의 경우는 그 범위를 넘어선 것 같았다.
그는 믿음을 강조했다. 환자에게 위로를 하려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말씀이고 그의 확신이었다. 하기는 기도하는 사람이 그렇게 믿지 않고 어떻게 환자를 붙들고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염려를 하는 것은 그가 환자에게만 매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주님께 매달려야 하고, 환자도 김 전도사가 아니라 주님께 매달려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그걸 직설적으로 그에게 말해 줄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전도사, 환자를 돌보는 것이 목회의 전부는 아닌 것 같아. 그것은 목회의 일부이지. 물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면 목회의 성과도 크겠지만 하나님이 언제나 기적을 나타내시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매달려 기도를 하는 거죠.”
“매달려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환자가 그렇게 해야지.
“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김 전도사를 의지하고 있잖아?”
“그건 그래요.”
“그러니까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도록 가르쳐야지.”
그리고 속으로, “김 전도사도 환자에게 매달리지 말고 주님께 그렇게 해.”라고 말했다.
“글쎄요.”
김 전도사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태도를 보였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 다음 이야기를 계속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그 환자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보내기 위해 그를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병은 곧 낫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김 전도사의 입에서 나와 퍼지기 시작한 그 이야기는 환자에게 큰 용기를 주고 있다고 했다.
어떤 소리가 되었든지 환자가 고침을 받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걸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에게는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한 소리일까 하고 자꾸 걱정이 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면 누구라도 선교사가 되겠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았다.
“저러다가 실수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게 되면 김 전도사가 감당해야 할 시련은 또 얼마나 심하겠는가?
이렇게 내가 마음을 졸이고 있는 동안에도 환자의 상태는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만 갔다.
“원래 죽을 사람은 죽기 전 낫는가 싶게 잠깐 좋아졌다가 죽고, 낫는 사람은 이제 죽는구나 싶게 악화되었다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병의 상태는 별로 신경 쓸 게 아닙니다.”
김 전도사는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 듣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거기에는 동의를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교사로 갈 준비나 미리 해 두세요. 어디든 하나님이 보내시는 대로 가야겠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을 정하세요. 중국이든지, 인도든지.”
나는 이런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김 전도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게 불안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갈 데까지 간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밀어붙이는 김 전도사의 담대한 믿음을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대도 어이 없이 무너졌다.
선교사 꿈을 키워나가던 그 청년이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큰일이군. 이렇게 죽을 사람을 선교사로 부르시기 위해 병을 주셨다고 했으니.”
처음 당하게 되는 장례식이라고 해서 내가 그를 돕기 위해 갔을 때 그는 이번에는 오직 장례식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 같았다.
다행히 그 장례는 잡음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내가 염려하던 시험 같은 것은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것은 김 전도사가 “그는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보다 하늘나라에서 더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교를 한 것이 성도들에게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산에 나무가 많아도 쓸 만한 재목부터 베어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려고 형제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나는 하늘나라에서 그 형제가 맡게 될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서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오, 주여!”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될 것 같은 걱정이 일어났다.
나는 김 전도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여태까지 찰 참아오던 사람들의 감정이 폭발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의 기적이야!”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이 그의 설교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믿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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