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89 에끼! 이 사람아!
황 영 찬
같은 교단은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고 있는 김 목사가 내게 상담할 사람을 보낸다고 하더니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찾아왔다.
“저는 신촌 교회의 이 성필 집사입니다. 우리 목사님께서 목사님을 찾아뵙고 의논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글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저보다는 김 목사님이 더 훌륭하신 분인데.”
나는 그를 내 서재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가 편안한 마음으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동안 우리는 천천히 차를 마셨다.
“목사님께서는 저희 목사님으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으셨나요?”
차를 마시고 나자 그는 말문을 열었다.
“아니오. 그냥 사람을 보낸다고만 말씀하셨어요.”
김 목사가 사람을 보낸다고 했을 때 아무 설명이 없었으므로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김 목사가 정말 사람을 보낸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말씀을 드리지요.”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이장 선거에 관한 것이었다.
어디나 마찬 가지이지만 그곳 이장도 큰 소리 한 번 못치고 무엇 하나 생길 게 없는 자리였다. 활동비 명목으로 쥐꼬리만 한 활동비가 나오지만 뻔질나게 드나드는 면사무소 차비가 빠듯했다. 거기에다 반장들 수고한다고 가끔씩 막걸리라도 사주게 되면 으레 제돈 찔러 넣기 십상이다.
그래서 저 좋아 이장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게 무슨 명예직이라도 되면 그딴 돈 좀 쓰더라도 이장 감투 쓰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겠지만 모두 제일 바쁘다고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 누가 이장을 맡아도 1년을 넘기지 않고 내놓았다. 그래서 번갈아 1년씩 맡아 했다.
그런데 그게 조금씩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을 저수지에 낚시터가 생기면서 외지에서 낚시꾼 차량이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이장이라고 가끔씩 대접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낚시터 부근에 매운탕 집이 들어서면서 이장은 정중한 유지 대접을 받았다. 그러자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연말이 되기가 무섭게 이장 넘겨준다고 야단법석이더니 이젠 서로 넘겨받으려고 성화다. 그것도 서로 하겠다는 바람에 마침내는 후보를 세워놓고 마을 회관에서 투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거죠. 낚시터와 매운탕 집에서 마을 어른 대접을 받게 되니 그 자리가 이권(利權)의 자리가 된 거죠. 그런데 이게 처음으로 하는 선거다보니 말썽이 생겼어요.”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데요?”
“이장이 셋이나 생겼어요.”
내가 바짝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내가 속한 교단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장이 셋이 된 것은, 신임 이장에게 정상적인 인계인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불 구(舊) 이장이 그 자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고, 두 번째는 이장 선거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자녀의 진학 때문에 읍내로 주민등록을 옮겨 놓은 아내의 일이 말썽이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규정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동안에는 그런 일이 문제도 되지 않았던 터라 그냥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낙선자는 그냥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셋째는 그래서 투표에서 낙선되었던 사람이 당연히 자기가 당선자라고 주장하지만 득표수가 10%도 되지 않은 차점자를 당선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반대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이니 무슨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그런 일을 가지고 재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을을 셋으로 쪼갤 수도 없고요. 그래 목사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나는 대답이 궁해 말머리를 돌렸다.
“우리 목사님은 입을 다물고 계세요.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하시던지 그 말씀이 마을에 퍼지게 될 테니까 숫제 대답을 피하시는 것 같아요.”
“글쎄요. 나도 당장은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그런 일에는 서로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겠죠. 오늘은 그냥 돌아가세요. 내가 좀 더 생각해보고 무슨 묘안이 생각나면 김 목사님께 말씀을 드리지요.”
그래서 그가 돌아갔다. 나는 즉시 김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하필 그런 상담을 내게 보내서 골치를 아프게 만들어?”
“그래, 어떻게 말해주었나? 무슨 묘책이 있어?”
“김 목사가 못하는 걸 나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어?”
“그래도 나와는 다르지.”
“다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왜, 당신네 교단에는 지금 총회장이 셋이라면서? 신문에서 봤지. 그래서 쉽게 대답이 나올 줄 알았지.”
“에끼! 이 사람아!”
그제야 나는 그가 왜 내게 아까의 그 사람을 보냈었나를 알았다. 그러나 나는 어느 일도 해결책을 모르고 있었다.
“어서 해결책을 말해보게.”
그는 장난스런 말투로 내게 말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
나도 슬그머니 장난기가 동했다. 그래서 큰 소리를 쳤다.
“그래, 어떤 방법이지?”
“그 이장들이 이사를 가든지, 문밖출입을 하지 않으면 되지.”
“왜, 죽으면 된다고 하지 않고?”
“그딴 자리를 놓고 죽으라고 할 수야 없지.”
“그럼 총회장은 높은 자리니 할 수 있겠군.”
“에끼! 이 사람아! 농담 말게.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에게 죽으라니.”
나는 얼른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마침 그에게 손님이 왔으므로 우리의 전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어느 쪽이든지 먼저 해결되면 바로 그것이 해답이 될 텐데.”
나는 문득 그 생각을 하다가 아까 장난처럼 말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사를 가든지, 문밖출입을 하지 않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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