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92 들보 신자
황 영 찬
목사인 내가 아내와 정 인자 집사 댁을 심방했을 때다.
그날 나는 정 집사가 차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그녀의 성경책을 펼쳤다. 우리 교회의 금년 목 표 중 하나가 “성경완독”이기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성경을 읽었는지 성경 읽기 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성경 책 갈피에 있으리라고 여겼던 성경 읽기표는 보이지 않고 A4용지가 반으로 접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이 설교에 대한 메모라고 생각하면서 무엇이 적혀있는지 궁금한 생각에 접혀 있는 부분을 펼쳤다. 그러나 그것은 설교에 대한 메모가 아니었다.
바로 며칠 전 이웃 교회에서 있었던 부흥회에서 강사가 우스개 소리로 말한 ‘신자의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그날 부흥회 강사는 이런 신자들이 있어서 교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며 말했는데 그것을 모두 받아 적은 것이다.
부흥 강사는 문제의 신자들을 비유해서 여러 유형으로 나누고 있었다.
먼저 ‘해바라기 신자’를 이야기 했었다. 주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 신자들이 어느 목사나 집사를 따라 이리 저리 변하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감투신자’도 있다. 교회에서도 무슨 감투를 써야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거나 숫제 교회 출석을 게을리 하는 신자이다.
‘인력거 신자’는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하고 끌고 다녀야 교회에 나오는 초보 신자이다.
이렇게 붙여진 별명이 꽤나 많았다. 그런데 정 집사는 빠른 솜씨로 그 이름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록을 해 놓은 것이다. 적당히 설명까지 달아 놓았다.
정작 내가 놀라고 있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것은 정 집사가 우리 교회의 집사들을 거기에 맞춰 나눠 놓았기 때문이다.
정 집사가 장난삼아 해본 일이겠지만 틀린 판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지 어려우면 살짝 빠지는 공 집사를 ‘미꾸라지 신자’로 분류를 하는 등 아주 그럴 듯 했다.
바로 그때 나에게는 장난기가 돌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아래에다 재빨리 몇 자 적어 놓고 그 옆에다 “정 집사”라고 썼다.
마침 정 집사가 준비한 차를 가져왔으므로 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그 종이를 성경책에 끼워놓고 태연스럽게 차를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돌아왔으므로 내가 써놓은 글은 아무 탈 없이 넘어갔다.
나는 그 뒤로 정 집사가 무슨 눈치를 채지 않았나 하고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전연 그런 기색은 없었다.
여러 날이 흘러간 뒤에도 마찬 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무관심하여 그 종이를 아예 관심 밖의 일로 젖혀놓은 모양이라고 여겼다. 공연히 내 쪽에서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지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절호의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호기심에 잔뜩 부푼 마음을 달래며 그녀의 성경책에서 그 종이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얼른 그것을 펼쳤다.
“아니 이럴 수가?”
나는 보기 좋게 반격을 당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분명히 내가 써놓았던 것은 “들보신자 - 정 집사”였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서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7:4)”고 하신 것을 인용하여 쓴 것이다.
그런데 정 집사가 바로 그 옆에다 선명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써놓은 것이다.
“목사님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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