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11 예수님이 받으신 침례 11.8.28(성령강림후11주)
마3:13-17
예수님의 개인 생활은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믿을 게 못된다.
그의 나이 30세까지 나사렛에서 목수의 생활로 공생애를 준비해 오신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출발을 요단강으로부터 시작했다. 그곳에는 약대 가죽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회개하라고 외치는 침례요한이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이 세상에 6개월 먼저 태어났으며 그의 사명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선지자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침례를 베풀고 있는 요단강으로 가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려고 하자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내게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며 거절을 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하시니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었던 것이다.
침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일을 통해 침례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도록 하자.
Ⅰ.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요단강까지 가서 침례를 받으셨음을 배워야 한다.
13절에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니”라고 하였다.
나사렛에서 여기서 말하는 요한이 침례를 베풀던 요단강까지의 거리는 약 100km 이었다.
예수님이 요한을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침례를 받기 위해서 그곳까지 걸어가신 것이다.
1.이것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기 위하여 수고하셨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위치로 보아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고 또 예수님이 원하시면 요한을 오라고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에게 나아가기 위해 2백 50리를 걸으셨고 또 요한이 사양을 하는 데도 그에게서 침례를 받으신 것이다.
주님이라도 침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2백 50리를 걸어가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2.이것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기 위하여 자원하셨음을 나타낸다.
믿음이 그 효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자원해야 하는 것이다.
침례를 받는 것도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에 자원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침례를 받도록 격려를 할 수 있지만 강제로 받게 하지는 않는다.
믿음에서는 아무 것도 강제로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3.이것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기 위하여 겸손하셨음을 나타낸다.
요한의 침례를 받기 위해서 2백 50리를 걸어가신 일이나 주님이 자원하여 그에게 침례를 받겠다고 하신 일이 바로 주님의 겸손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말씀을 하셨다.
겸손에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겸손하려면 첫째 자신이 낮아져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보고 낮아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일도 낮아지신 것이다.
디엘 무디는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으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하나, 그러나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전한다.”라고 말했다.
겸손하려면 둘째 상대를 높이고자 해야 한다.
자기가 낮아지되 상대방을 함께 끌어내리면 그것은 겸손이 아닌 것이다. 상대방을 높이되 자기도 함께 높아지려고 하면 그것도 겸손이 아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것은 그를 높이려고 하는 마음이 계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Ⅱ.예수님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침례를 받으셨음을 배워야 한다.
1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 베푸는 것을 거절하였으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침례를 베풀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신 그 뜻은 무엇인가?
1.먼저 “이와 같이 하여”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침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 가운데에 순종의 정신으로”란 뜻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요한에게 “당신은 내게 순종하여 침례를 베풀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침례를 받겠습니다.”의 뜻으로 말씀을 한 것이다.
믿음이나 하나님의 일에는 순종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2.다음으로 “모든 의”라는 말의 뜻을 알아야 한다.
의란 일반적으로 옳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일이 될 때에는 옳은 일이다.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될 때에는 “의무”가 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 침례를 베푸는 것은 요한의 의무요 요한에게 침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의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순종심과 의무감은 함께 있게 되고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침례를 받는 것도 순종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3.그리고 “요한이 허락”해서 침례가 베풀어졌음을 알아야 한다.
합당하게 행하자고 하시는 주님은 요한이 동의하도록 설득은 하였으나 강압은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성경은 요한이 허락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침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질서를 존중하시는 주님의 정신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Ⅲ.예수님이 그의 신분과 사역을 분명히 들어내기 위해 침례를 받으셨음을 배워야 한다.
16절 17절에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침례를 받으셨으나 사실은 침례를 통하여 영광을 얻기도 하셨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일어난 사건과 말씀이 그의 신분과 사역을 분명하게 나타냈기 때문이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의를 이루기 위해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은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께 임하시고 성부 하나님은 말씀을 하심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 들려온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1.“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는 예수님의 신분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그것은 시편 2편 7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그 뜻은 “하나님의 능력 있는 왕 혹은 메시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 있는 왕이요 구세주”라고 신분을 밝혀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왕이시며 구세주”라고 믿어야 한다.
2.“내 기뻐하는 자”는 예수님의 사역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그것은 이사야서 42장 1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그 뜻은 “고난 받는 종”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수난의 종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한다.
이처럼 예수님이 침례를 통해서 그의 신분과 사역을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도 침례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교훈과 적용
우리는 지금까지 왜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셨는가를 살펴보았다.
주님은 목적 없이 아무 것도 행하지 않으셨다.
친히 침례를 받으신 주님은 마지막 지상 명령에서 침례를 받고 베풀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와 연합하여 침례를 받으므로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죄 된 옛 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이요 또한 물에서 나오는 것은 그와 함께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침례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우리가 주님처럼 장차 죽음 가운데서 부활할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