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1142 복음에 합당한 삶 11.10.16(성령강림후18주)
빌 1:27-30
바울은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고하고 있다. 바울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었다. 바로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이다.
Ⅰ.우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
그러면 바울이 권고하고 있는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무엇인가?
1.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서약한 사람으로서 합당하게 하라는 것이다.
말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행동이 주님께 신앙을 고백한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주님께 서약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으로, 왕으로, 신으로 고백했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경건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말로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신분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2.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합당하게 살라는 뜻이다.
개역 개정판 성경에서는 “생활하라”를 난 하에서 “시민 노릇”이라고 주를 달고 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로마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시민의 특권과 책임을 상기 시키며 천국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고 있다. 천국 시민처럼 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수준보다 높게 살아야 한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어느 날 성경을 읽고 있는데 한 청년이 찾아왔다. 청년은 마크 트웨인이 성경을 읽는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성경을 읽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선생님은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이해하시나요?”
그러자 마크 트웨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제가 마음 아픈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는 말씀조차 삶에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복음대로 살아야 한다.
3.그것은 실제로 복음과 일치하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복음은 율법과 대조되고 있다.
율법은 행위를 강조하고 있지만 복음은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율법은 의식을 강조하지만 복음은 은혜를 강조한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자는 기쁨과 감사를 하게 된다.
복음은 복된 소리이기도 하지만 기쁨의 소리이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고 부활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행하신 일과 그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어 기쁨이 되고 그래서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받은 구원을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율법의 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복음의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에서 오는 체험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구원의 확신과 동행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인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Ⅱ.우리는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27절)”
협력의 뜻은
1).함께 노력하는 것.
2).어떤 사람이 일을 잘 하도록 힘을 모아주는 것.
3).일제히 노력하는 것 등의 뜻이 있다.
그러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어떤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협력하는 것이다.
복음은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므로 교파가 달라도, 교회가 달라도, 신앙의 형식이 달라도 협력해야 한다.
2.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복음은 처음부터 전파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된 소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3.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협력하는 것이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협력함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1).복음이 어떤 것임을 알려야 한다.
2).복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려야 한다.
3).복음의 결과가 어떤 것임을 알려야 한다.
Ⅲ.우리는 아무 일에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28절)”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어떤 일에서든지 놀라지 않는다는 뜻이 있다.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심을 믿어야 놀라지 않게 된다.
준비하고 있어야 놀라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훈련이 필요하다.
2.이런 일이 증거로 필요한 일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28절)”
그런 일은 멸망하는 자에게는 악행의 증거가 될 것이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믿음의 증거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증거가 되니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3.이런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28절)”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Ⅳ.우리는 은혜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절)”
1.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2.우리에게 주신 은혜 때문에 그리스도를 잘 믿어야 한다.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29절)”
은혜는 그를 믿는데 유익이 되어야 한다.
3.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다.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절)”
고난을 이기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인내하는 은혜를 주셨다.
고난을 이기게 하시려고 하늘의 소망이 넘치는 은혜를 주셨다.
어느 장군이건 제일 곤란한 일을 위해서 제일 우수한 군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떤 고난을 받는 것은 성도들에게 명예스러운 일이다.
교훈과 적용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바울은 이런 권고를 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기대했다.
첫째 믿음에 굳게 서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아무 것도 그들을 넘어뜨리지 못하기를 바랐다. 우리도 믿음에 굳게 서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한 마음이 되기를 기대했다.
분열은 그들의 힘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복음전파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월남에서 부상당하여 돌아온 미국 군인들을 위해 대대적인 위문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총 감독은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인 밥 호프를 공연에 초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밥 호프는 선약 때문에 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 감독은 밥 호프가 없는 위문 공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위로해 주는 중요한 자리에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여러 번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밥 호프는 “ 5분만 무대에 올라가 얼굴을 보이고 내려와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허락을 했다.
드디어 공연 당일 5분을 약속하고 무대에 올라간 밥 호프는 5분이 지나도 끝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10분, 15분, 25분이 지났는데도 공연을 계속했다. 밥 호프는 40분 동안 공연을 하고 내려왔는데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감독은 5분을 공연하기로 약속한 그가 40분을 하게 된 경위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밥 호프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 앞줄에 있는 두 친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나가보니까 앞줄에 상이군인 두 사람이 열심히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오른 팔을 잃어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왼팔을 일어버린 사람이었다. 오른 팔을 잃어버린 사람은 왼팔을, 왼팔을 잃어버린 사람은 오른 팔을 사용해서 두 사람이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밥 호프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저 두 사람은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 팔을 잃어버린 두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함께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된 기쁨을 배웠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복음을 따르는 사람의 특징이다.
셋째 받은 은혜를 따라 충성하기를 기대했다.
주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이 계속 믿음을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복음을 따라 충성하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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