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1145 바라바를 선택한 사람들 11.11.6(성령강림후21주)
눅23:13-25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석방시키려고 4가지 일을 시도했다.
1.14절에 나오는 대로 그는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2.15절에 나오는 대로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므로 헤롯에게로 보냈었다. 그러나 헤롯은 예수를 도로 빌라도에게 보내며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을 일이 없다”고 하였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인한 셈이었다.
3.16절에 나오는 대로 빌라도는 “때려서 놓겠노라”고 하였다. 죽일 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소리를 질러 이 사람을 없이 하라고 했다.
22절에서도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노니 때려서 놓으리라”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였다. 4.명절을 당하면 한 사람을 놓아 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빌라도는 그들에게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죄로 갇힌 자였다. 빌라도 총독이 바라바를 내세운 것은 그렇게 되면 그들이 예수를 선택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라바를 선택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를 선택한 그들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주었던 것이다.
Ⅰ.바라바를 선택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수를 내세워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예수님을 빌라도 법정에 고발한 대제사장과 관원들은 백성들까지 동원하여 그 수를 과시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그렇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였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의 뜻은 한 두 사람의 뜻보다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러 사람의 뜻은 대체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숫자가 오히려 문제가 될 때도 있다.
마태7:13-14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우선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편하고 쉬운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1명씩 나와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했다.
그런데 12명의 정탐꾼이 둘로 갈라졌다. 10명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2명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니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성들은 두 사람의 주장보다 10사람의 주장을 더 신뢰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을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점령을 포기한 사람들은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이다.
신앙은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에 많고 적은 수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숫자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빌라도는 많은 숫자 때문에 고민을 했고 결국 그릇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혼자서라도 진리를 수호해야 하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Ⅱ.바라바를 선택한 사람들은 크게 소리 질러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흔히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한다.
교통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큰 소리에 주눅이 들어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우선 큰 소리를 쳐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큰 소리를 칠 것이 아니라 경찰을 부르던가 보험회사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시비가 가려지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크고 분명한 목소리가 설득력을 가진다고 세일즈맨들에게는 크게 말하는 것부터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크게 외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하지 않는다.
진리는 크고 작은 소리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거짓이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고 침묵을 지키셨다.
빌라도는 법정이 떠나가도록 고함치는 그들의 소리 때문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을 내렸다.
성도들은 진리의 파수꾼이 되어 크게 외치는 소리 때문에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Ⅲ.바라바를 선택한 사람들은 희생을 내세워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그들은 예수를 없이 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달라고 했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였다.
그들은 바라바를 선택하므로 예수는 그보다 더 위험하고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들의 수고나 희생을 통하여 자기의 뜻을 정당화 시키려고 한다.
“오죽하면 우리가 이러겠느냐? 우리가 바라바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예수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행위야말로 가증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잘못이 바로 이런 숫법이다.
오로지 자기들의 당선이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이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다고 나팔을 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연출하는 쇼와 같은 것이다.
Ⅳ.바라바를 선택한 사람들은 계획이 성사된 것으로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자기들의 계획을 성사시키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마침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런 결정이 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켰다고 만족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사 되는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아닌 것이다.
잘 돼 가는 일에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 있고 잘 안 되는 일 중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성취되면 하나님 뜻이고 실패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라바를 선택한 사람들,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은 성공이 곧 정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방법과 목적이 다 함께 옳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성공이 다 하나님의 일도 아니고 실패가 다 마귀의 일도 아니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은 성공이다. 상을 받는 일도 성공한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실패를 했어도 상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과보다도 동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실패를 했더라도 동기가 올바른 것이라면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을 했더라도 동기가 옳지 않으면 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사람은 겉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을 보고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교훈과 적용
지금까지 살펴온 바라바를 택한 사람들의 잘못을 정리해보자.
1.그들은 많은 사람을 내세워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혼자라도 진리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2.그들은 큰 소리를 질러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큰 소리가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은 소리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온유하신 예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음을 유의해야 한다.
3.그들은 자기들의 희생을 내세워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그들은 바라바를 선택하는 것을 자기들의 희생으로 여겼다.
예수 때문에 살인자 바라바를 선택하는 것이고 예수 때문에 살인자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가증한 수법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4.그들은 자기들 계획의 성사를 내세워 자기들의 뜻을 정당화 했다.
하나님이 뜻이 아니면 성공했겠느냐고 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옳지 않은 목적을 위해 옳지 않은 방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도 아닌 것이다.
성도들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는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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